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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태훈
- 출판
- 남해의봄날
- 출판일
- 2016.10.25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
기적처럼 배에 자리를 잡고 나자 일순간에 긴장이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리가 좁아도, 허기가 져도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임길순은 그때 다짐했다. “이번에 살아날 수 있다면 평생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살겠다”고.
엄혹한 피난길에서 가족은 물론 같은 성당 식구와 흥남부두에서 만난 가톨릭 교육 200여 명을 함께 지켜 냈다. 그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는 다짐을 이미 피난길 현장에서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그가 먹는 장사를 시작한 이유는 엄밀하게 말해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먹기 위해서였다. 장사하다 남아서 나눈 게 아니라 안정적으로 꾸준히 나누기 위해 '부득이하게' 장사를 한 것이다. 장사를 위한 나눔이 아니라 나눔을 위한 장사였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미진은 조명을 바꾸었다. 어딜 가나 비슷해 보이던 빵들이 성심당에서는 조금씩 달리 보였다. 다른 빵집보다 훨씬 밝았고, 또 따뜻해보였다. 백화점에 진열된 명품이나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처럼 빵이 돋보이기 시작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는 속담은 성심당 빵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보기 좋은 성심당 빵은 먹기에도 좋았다.
1999년은 IMF 외환위기가 터진 지 2년도 채 안 되던 시기로 사회 전체가 구조조정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기업들은 회사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인건비부터 손을 댔다. 명예퇴직과 정리 해고가 범람했고, 그 결과 가정이 파괴되고 노숙자가 폭증했다. 경영난에 빠진 성심당도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직원 수와 제품 수가 너무 많아서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해결책은 간단했다. 인건비를 줄이고 제품의 종류를 단순화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부는 이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을 쳐내는 구조조정 대신 매출을 더 올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성심당에는 ‘노동’이 있다. 돈이 돈을 낳는 파생상품 따위는 성심당에 존재하지 않는다. 회사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답시고 부동산이나 금붙이를 사들이지도 않는다. 대신 사장부터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성심당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직하게 일한다. 그리고 그 노동을 소중하게 여긴다.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할 때는 말단 직원에게 미루는 대신 간부들이 먼저 나서서 떠안는다. 성심당의 소통은 바로 이런 ‘정직한 노동’ 위에서 이뤄진다.
모든 분야가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무지개 프로젝트
빨강 : 재화를 통해 올바른 경제 활동을 한다.
주황 : 우리는 성심인이다.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을 함께한다.
노랑 : 법률과 윤리 기준을 지킨다. 기업 경영에 있어 책임감과 정직성을 지닌다.
초록 : 정직한 재료와 환경보호로 인간의 존엄성을 갖는다.
파랑 : 조화롭고 따뜻한 가정 같은 환경을 조성한다.
남색 :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
보라 : 성심 가족으로 생각의 일치와 공유를 이룬다.
회사는 매출액 같은 사업 목표를 제시하는 대신 일터에서 일어난 사랑의 실천 사례를 책으로 묶어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행사 마지막에 임직원 모두가 일어나 한 목소리로 외친 "하나,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하나, 우리는 사랑의 문화를 이룬다. 하나, 우리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는 선서문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회사와 직원, 그리고 지역 사회가 함께 호흡하는 기업 문화를 성심당은 성실하게 추구하고 있었다.